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대로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뱉는다. 가령 ‘숨이 붙어있다’라는 표현만 봐도, 호흡이 생명에게 어떤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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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흡을 단지 바이탈 사인 같은 증거로써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엔 호흡이 가지는 균형에서 더 많은 생각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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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마신만큼 내뱉는다. 호흡을 이루는 들숨과 날숨은 이름마저 두 글자씩이다. 심지어 획수도 같다. 서로 그 균형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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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많은 운동이 그렇겠지만 특히 수영을 처음 배울 때가 떠오른다. 하나에 마시고, 둘에 뱉고. 한 번이라도 그 균형이 어그러질 때에는 어김없이 소독된 물의 비릿한 맛을 맛봐야 했다. 또 한 번에 너무 욕심부리며 들이마셔도, 지나치게 많이 내쉬어도 안 된다.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균형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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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까지도 나는 이런 균형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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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후로 무엇이 되어야만 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던 탓이다. 그래서 더 자주 나를 설명하고, 나를 이해하려 했다. 그러다 답을 찾지 못할 땐 나를 다독이고, 나를 다그쳤다. 때문에 많은 순간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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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돌아보면 이 모든 게 사랑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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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불안감은 빛 좋은 핑계일 뿐이었다.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나를 모든 것에 투영하고 또 그 모든 것을 애착 인형마냥 양손 가득 껴안고 다닌 꼴이다.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나’라는 것은 부푼 풍선마냥 수많은 것들로 힘겹게 채워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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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내가 바다가 되었고 다시 금세 산이 될 수 있었다. 또 풀과 벌레와 새가 될 수 있어서 그게 좋았다. 그러다 점차 그것으론 부족하다 느껴질 때가 왔고, 종국엔 수많은 책을 뒤적이며 희한한 용어들을 마구 집어삼켜야 만족하기에 이르렀다. 뒤로 이어지는 것은 배부른 허기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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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존재가 모든 될 수 있다면, 동시에 모든 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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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만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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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들이마시고 몇 년이나 내뱉질 않았던 것이다. 숨이 차면 고통을 잊기 위해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하는데 아마 나는 이 즐거움에 한동안 빠져버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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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면 찾아오는 안정감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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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오는 모든 것들을 나를 설명하기 위해 애써 붙잡아두려 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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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지진계가 그려놓은 그림같이, 마구 흔들린 궤적은 당장 어떤 모양이라 알아볼 길이 없다. 그러니 언젠가 다시 돌이켜보면 조금은 볼만한 그림이 되어있겠지 하고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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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마신 만큼 내뱉을 줄도 알아야 한다. 나를 사랑한 만큼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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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자. 들숨과 날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