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guage

현재 위치
  1. 게시판
  2. 편지 읽기

편지 읽기

편지를 읽어주세요.

게시판 상세
제목 불완전연소_不完全燃燒
작성자 postershop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22-06-29 14:37:09
  • 추천 추천하기
  • 조회수 450

불완전연소_不完全燃燒

 후회는 다 타지 못한 마음이 남긴 재, 그러니 내 삶은 불완전 연소다. 이런 사람들은 봄이 오고 가벼운 바람이 불어도 나부끼는 재에 고통스러운 기침을 할 수밖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타오르고 싶었는데. 무엇이 두려운 건지 쓸데없는 눈물만 흘리고, 젖게 만들어 다 타질 못했다. 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망설였고, 언제나 물은 끓지 않았다.

망설임은 젊음을 죽이기 위해 태어났나. 시시한 생일을 하루 앞두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자와 사슴을 떠올렸다. 재빨리 행동하지 않으면 사슴은 잡히고 말고, 젊음도 항상 머뭇거리다 끝나고 마니까.

별다른 이야기도 없이 죽기만 하는 사슴들. 그래, 하루 정도는 사슴이 도망치는 걸 보고 싶어 졌다. 하루 정도는 아주 먼 곳으로- 자유로이 뛰어가는 사슴을 보고 싶었다. 어쩌면 마지막 남은 사슴일지도 몰라. 누군가 이렇게 속삭였다.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머뭇거릴 것 없다. 사자가 쫒고 있다. 곧바로 외투 하나만 챙겨 옆 도시로 향했다. 거대한 소각장이 있는 도시. 어쩌면 여기 사람들은 완전히 연소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잠에 들 때 ‘이거면 됐어’ 하는 말버릇이 있지 않을까. 나도 소각장에 가기만 한다면.

이런 쓸데없는 생각은 끼익-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버스 덕에 멈춰 섰다. 아쉽게도 목적지는 그보다 조금 더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버스에 올라타 동경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구석구석 살폈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과 손짓을 따라 하면서 어색한 긴장감을 녹여보려 했지만, 어느새 다들 내리는 준비를 하는 것 같아 일찍 그만두었다.

하지만 의외로 소각장엔 아무도 내리질 않았다. 가득 들어찬 사람들, 그 사이를 비집고 나아가야지. 아니 민폐다. 미리 앞으로 나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무것도 아닌 결정에도 나는 또 망설였고, 반대로 문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빠르게 닫혔다. 결국 버스는 나를 뱉어내지 못한 채 회차했다.

부끄러웠다. 아, 사슴의 다리 하나 정도는 할퀴어진 기분. 얕은 피부 위로 새어 나오는 피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한 번만 더 망설이면 끝이다. 나는 다음 정거장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급히 도망치듯, 사자의 아가리에서 튀어나가듯 가까스로 땅 위에 발을 딛어야 했다.

잘했다. 잘 도망쳤다. 가쁜 숨을 뱉고- 들이 마시니 염소, 그러니까 소독약의 향이 짙게 느껴졌다. 헛웃음이 났다. 애써 소각장을 찾아왔는데 이건 마치 불나방이 물에 빠져 죽는 꼴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소각장이든, 수영장이든 좋다. 다친 사슴은 몸을 숨겨야 한다.


한눈에 봐도 이곳은 꽤 크기가 큰 편이지만, 외곽에 위치해있다 보니 인기척이 거의 없어 들어가면서도 의아했다. 문이 닫혀있으면 어쩌지. 그럼에도 언제나 운은 제멋대로 찾아온다. 나를 본 한 사람이 수영을 하러 왔냐고 물었고- 나는 이곳 사람인 척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터운 트위드재킷에 정장 바지. 게다가 빈손으로 왔으니 그는 제법 눈치가 빨랐다. 입장료에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대여하면 그리 비싸진 않다고 했다. 나는 건네받은 옷으로 갈아입으며 그래, 사슴은 변장에 소질이 없다. 그래서 다른 도시 사람인 걸 너무 쉽게 들켜버렸구나 생각했다. 분명 이곳 사람이었다면 곧장 케비넷으로 향했을 것이다. 혹시 카운터의 그가 사자였을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을때에는 역시 꽤 넓은 수영장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본 수영장은 이른 시간 탓인지 옅은 숨도 쉬질 않아 푸른 땅 같았다. 저 땅을 파고 숨는 거야. 분명 아무도 없는데, 또다시 누군가 말했다. 수영은 못한다고 답하려다 호기심에 발 끝을 집어넣어 보니 다리, 배, 가슴, 얼굴 순서대로 묘한 흥분이 올라왔다. 결국 나는 사슴인데- 하면서도 크게 뛰어올랐다.

과연 몸이 부서질까, 물이 부서질까. 다행히 급작스런 방문에도 꼭 내 몸만큼의 물들이 자리를 양보를 해줬고- 예상치 못한 격한 환영에 눈과 코가 매웠다. 시원했다. 중력에서 멀어진 팔다리를 이리저리 휘적여도 보고 즐거웠다. 한편으로는 급한 대로 머리끝까지 잘 숨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도망자였고, 숨은곳이라곤 겨우 물거품 속의 낙원이었다. 가벼워진 몸을 시샘이라도 하는지 더 크게 부풀어 오르는 불안함이 오금을 저리게 했고, 잠잠해진 물속에서 눈을 떠보니 수면 위에는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다. 역시 들켰구나. 흘린 피 냄새를 맡고 이곳까지 왔구나. 점점 폐가 뜨거워지고 이제 남은 게 별로 없다는 걸 느꼈지만, 나는 쉽사리 위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옴짝달싹할 수 없다. 시간이 실처럼 가늘게 늘어지고, 고통스러웠다. 그저 안간힘을 써가며 남은 숨을 어떻게든 지키려 했지만, 이미 불이 붙은 숨이 멈출 줄을 모르고 타올랐다. 이번에야말로 어떤 어리석음도 남지 않으려는 듯이. 어렴풋 폐가 소각장보다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순간 맑아졌다. 이상했다. 남은 숨이 하나도 없는데.

어느새 입안까지 물이 차올라, 하는 수 없이 기포 몇 개를 만들며 들어올 때보다도 요란하게 퇴장해야 했다. 뜨거워진 폐가 알아서 숨을 빨아들이고- 내뱉기를 몇 번일까. 흐릿했던 시야 앞으로 아까 마주친 그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자다. 그는 변장한 사자구나.

그런데 어째서인지 나는 놀라울 만큼 평온했다. 나는 이미 죽은지도 모른다. 아니면 두려움마저 다 타버린 건지도 모른다. 정적을 깨고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는 옅게 웃어 보이며 인사 대신 이곳에선 수영모를 해야 한다고, 나만 괜찮다면 자신의 것을 빌려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얼떨결에 그가 내민 수영모를 받아 들고 그렇게 한참이나 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금씩 웃음이 났다. 가만히 웃기만 하니 내 주위로 푸른 땅도 따라 웃는지- 조금씩 일렁였다. 한참 전에 사라진 그에게 수영모를 돌려줘야겠다 마음먹었고, 동시에 내가 물에 떠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기분 좋게 말라있는 큰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카운터로 가보니 그는 어디로 가고 빈 의자만 뒤돌아 있었다.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대신 수영모를 가지런히 개 창 안쪽으로 넣어 두었다.

밖으로 나서니 어느새 해가 꽤 내려앉았다. 어디선가 가벼운 바람이 불어 젖은 머리카락에 닿았다. 습관처럼 기침을 하려다, 하늘을 보고 크게 숨을 쉬었다. 소각장과 수영장이 공존하는 도시의 공기는 차갑고 개운하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지친탓인지 졸음이 쏟아졌다. 버스 창문에 기댄 채 이거면 됐다고 중얼거렸다.


첨부파일
비밀번호 수정 및 삭제하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댓글 수정

비밀번호 :

/ byte

비밀번호 : 확인 취소

WORLD SHIPPING

PLEASE SELECT THE DESTINATION COUNTRY AND LANGUAGE :

GO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