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짓궂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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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변덕이 여름비를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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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맑기를 기다리거든 어김없이 울음을 터트리고, 쏟아지는 눈물 훔쳐보고자 작은 손수건 챙겨 나가면 하릴없이 송골송골 맺힌 땀만 닦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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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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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우연히 찾아든 마음이지만, 나는 밤낮으로 붕대를 갈고 사랑 잘게 부수어 그 입에 흘려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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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떠나던 날, 이른 새벽부터 알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구름보다 더 높은 곳을 날던 당신이고, 나는 바위 뚫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니 두 번의 우연은 찾아오지 않을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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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저 멀리 날개가 달린 것 모두 당신인 줄로만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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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이따금 당신이 한 번만 더 다치길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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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다림에 엉겨 붙은 못난 마음도 이제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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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바다를 건너 사라진 당신 따라 내 몸도 너른 바다 위로 띄워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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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모두 끊어 냄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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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떠나가고 세상을 빙 둘러 다시 제자리로 오기 위해서는 이천년쯤의 시간이 필요하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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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긴 시간 사이 한번을 마주치지 못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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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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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우리 사이에 우연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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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당신에게 가는 내가 여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