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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땅조차 꽝꽝 얼어버린 겨울 논 한쪽 구석은
작성자 postershop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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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2-03-02 16: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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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조차 꽝꽝 얼어버린 겨울 논 한쪽 구석은 호일에 돌돌 말아둔 고구마나 감자를 서리해온 볏단 아래 넣고 구워 먹기 좋은 장소다.

서울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거짓말이라 하지만, 털털거리는 작은 시골 버스가 하루에 딱 2번 다니는 마을 끝트머리에 살았던 나는 더하면 더한 이야기도 해줄 수 있다.

그리고 그때를 깊이 그리워하는데, 여기서 정말 그리운 것은 잘 익은 고구마도 아니고, 산 구석구석 헤집으며 따먹던 버찌도 아니다. 바로 시골집에 있던 낡은 욕조이다.

자의 반 타의 반 일찍이 타지생활을 시작한 터라 욕조는커녕 정상적인 샤워 시설은 구경도 못 해봤다. 매번 샤워기에서 튄 물들에 변기 옆 휴지가 젖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나마 멀쩡했던 건 기숙사 단체 샤워실 뿐이겠다.

어린 날의 낡은 욕조를 떠올리면 누군가 온몸을 안아주는 그런 감촉이 떠오른다. 가득 담긴 물의 표면 위로 올라오는 비린 향이 좋다. 아무 생각 않고 잠겨 듣던 물속 소리도 역시 좋다.

그래서 1년 주기로 이사라고 부르기 민망한 이사를 할 때면 어김없이 욕조가 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 투덜거렸다. 그렇게 십 년 가까이 이곳저곳 몸을 뉘었고, 최근에는 운이 좋게도 다시 낡은 욕조가 생겼다. 짐 정리를 채 다 마치지 않았지만 요즘 나는 일을 마치면 첨벙 물 위로 떨어지는 상상을 먼저 한다.

바쁜 척 살다 보니 정말 바빠져 버린 삶 속에 쉬는 법을 까먹었다지만, 따듯한 물에 몸을 뉘면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 빠르다는 빛도 물속에선 이리저리 휘청이는데 이곳에 잠긴 내 걱정이라고 별수 있을까.

이렇게나 좋은 점이 한가득 채워져 있는 욕조가 나를 슬프게 하는 단 한 가지는, 그새 몸이 부쩍 커버려 더는 몸을 한 번에 다 담글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삐죽 튀어나온 못난 무릎을 보고 있자면 이제는 내가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은 쓸쓸함을 느낀다.

물속에 머리를 푹 넣어보려 하면 다리가 눈치 없이 쑥 올라오고, 차가워진 다리를 욱여넣으면 또 별수 없이 머리가 불쑥 튀어나온다.

다 커버린 나는 이제 무언가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존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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