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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삶은 지진계가 그려놓은 그림인가요.
작성자 postershop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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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2-03-02 16: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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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11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대로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뱉는다. 가령 ‘숨이 붙어있다’라는 표현만 봐도, 호흡이 생명에게 어떤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겠다.

하지만 호흡을 단지 바이탈 사인 같은 증거로써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엔 호흡이 가지는 균형에서 더 많은 생각을 얻는다.

정확히 마신만큼 내뱉는다. 호흡을 이루는 들숨과 날숨은 이름마저 두 글자씩이다. 심지어 획수도 같다. 서로 그 균형이 아름답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많은 운동이 그렇겠지만 특히 수영을 처음 배울 때가 떠오른다. 하나에 마시고, 둘에 뱉고. 한 번이라도 그 균형이 어그러질 때에는 어김없이 소독된 물의 비릿한 맛을 맛봐야 했다. 또 한 번에 너무 욕심부리며 들이마셔도, 지나치게 많이 내쉬어도 안 된다.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균형이 전부였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나는 이런 균형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된 후로 무엇이 되어야만 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던 탓이다. 그래서 더 자주 나를 설명하고, 나를 이해하려 했다. 그러다 답을 찾지 못할 땐 나를 다독이고, 나를 다그쳤다. 때문에 많은 순간 나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실 돌아보면 이 모든 게 사랑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그 불안감은 빛 좋은 핑계일 뿐이었다.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나를 모든 것에 투영하고 또 그 모든 것을 애착 인형마냥 양손 가득 껴안고 다닌 꼴이다.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나’라는 것은 부푼 풍선마냥 수많은 것들로 힘겹게 채워져 갔다.

처음엔 내가 바다가 되었고 다시 금세 산이 될 수 있었다. 또 풀과 벌레와 새가 될 수 있어서 그게 좋았다. 그러다 점차 그것으론 부족하다 느껴질 때가 왔고, 종국엔 수많은 책을 뒤적이며 희한한 용어들을 마구 집어삼켜야 만족하기에 이르렀다. 뒤로 이어지는 것은 배부른 허기짐 뿐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모든 될 수 있다면, 동시에 모든 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나는 나만 사랑했다.

숨을 들이마시고 몇 년이나 내뱉질 않았던 것이다. 숨이 차면 고통을 잊기 위해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하는데 아마 나는 이 즐거움에 한동안 빠져버렸던 것 같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면 찾아오는 안정감은 위험하다.

찾아오는 모든 것들을 나를 설명하기 위해 애써 붙잡아두려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진계가 그려놓은 그림같이, 마구 흔들린 궤적은 당장 어떤 모양이라 알아볼 길이 없다. 그러니 언젠가 다시 돌이켜보면 조금은 볼만한 그림이 되어있겠지 하고 말아야 한다.

들이마신 만큼 내뱉을 줄도 알아야 한다. 나를 사랑한 만큼 다른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기억하자. 들숨과 날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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