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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른다는 것은 언제나 끝이 좋지 않았다.
작성자 postershop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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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2-03-02 16: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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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는 것은 언제나 끝이 좋지 않았다. 중학교로 올라가 처음 시험을 칠 때에는 수성 사인펜으로 답안지를 냈었고, 처음 고백을 할 때엔 부끄러움에 문자를 이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도통 겪어보질 않은 것들뿐인 나이 아니었나.

그래도 수많은 비디오 가게 앞에 서서 새로 나온 영화 제목을 읊어볼 때만큼은 모르는 게 가장 좋았다.

빤질빤질한 검은색. 새 비디오테이프의 모서리가 제법 날카롭고, 앞과 옆으로 붙어있는 스티커는 색이 바래지 않아 선명하고 깨끗했다. 괜히 경건해지는 마음으로 슬며시 테이프를 들어보면 이음새들이 헐거운 느낌이 없이 짱짱했다. 많은 이가 숱하게 돌려본 탓에 덜그럭 소리를 내는 쇼생크 탈출 비디오와는 많은 게 달랐다. 이런 새 비디오를 대여해 검정 비닐봉지에 담으면 낯설고 설레는 마음이 두 배로 증폭되곤 했다.

돌이켜 보면 이때부터 모른다는 게 꽤나 즐거운 일인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처음 여권을 만들었을 때도 그랬다.

들어가는 사진에 귀가 얼마나 보여야 하는지 머리 위로 여백이 얼마나 나와야 하는지는 고사하고, 5년이니 10년이니 하며 여권에 기간이 있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가격차이가 그렇게 큰지도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받아본 여권은 너무 빳빳해 잘 펴지거나 접히지도 않는 것이 새 비디오테이프를 꼭 닮아있었다. 무엇으로 채워질지 모른다는 설렘이 정말이지 꼭 닮아있었다.

비록 이 10년짜리 비디오테이프는 잠시 멈춰있지만, 어떤 배경이, 어떤 음악이, 어떤 인물들이 새롭게 등장할지 상상하면 여전히 나는 모른다는 사실이 아주 즐겁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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