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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람은 불안하고 불안한 만큼 또 자유로워.
작성자 postershop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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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2-03-02 16: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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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37

항상 옆에 있던 네게 이렇게 메일을 보내는 게 꽤 어색하면서도, 신선해서 좋다. 그냥 메시지를 남기려 했는데, 넌 잠이 옅으면서도 꼭 알람은 켜두잖아.

여긴 정말 우리가 유튜브로 봤던 것처럼 유심칩이나 와이파이도 잘 안되고, 시시각각 변하는 버스 시간표 탓에 (작고 낡은 봉고차를 버스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도착하는 데까지 고생 좀 했어.

그래도 무사히 도착하고, 그새 얼마나 쏘다닌 지 몰라. 너무 열심히 다녔나 바지도 조금 헐렁해진 것 같아. 그때 허리춤에 끈이 있는 거로 꼭 사야 한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같이 산 샌들은 이제 버려야 할 것 같네.

사실 이것저것 자랑을 한가득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까 괜히 네 바보같이 웃는 리액션이 생각나 김이 좀 새. 돌아가면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줄게.

단지 나는 그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혼자인 시간도 많았어. 내가 가려던 길이 하나일 때도 있었고, 여러 갈래로 나뉜 때도 있었지. 구석에 작게 핀 꽃마저 내가 정말 먼 곳에 와있다는걸 알게 해 줄 만큼 온통 다른 것들뿐이고.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혼자 덜컥 떠나버린 여행이지만 나는 이곳에서 자유라는 게 여전히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

같이 일을 그만두고 따라오려는 널 말리고, 설득하느라 진땀뺀 걸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기까지 해.

기어코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겠다 해서 사둔 비행기표를 빼면 나는 어디에도 매여있지 않고, 분명 자유로운 상태인데 말이야.

나는 내일 이곳에 있을 수도, 있지 않을 수도 있어. 아니 지금 당장 다른 마을로 떠날 수도 있지.

몇 년 전 새해에 내년에는 어디에 있을까 하고 물었을 때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책상 앞?’ 이라고 했던 것에 비하면 아주 아주 자유로워 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당장 마냥 네가 전화로 좋냐고 물어보면 한참은 대답을 못 할지도 몰라.

이제 나는 자유로워진 만큼 많은 가짓수의 불안함을 새로이 느껴. 새로운 길 앞에 서 있노라면 별의별 상상이 시작되니까.

예전에 읽은 책에서 어떤 인물이 했던 대사가 이제야 이해가 돼.

소설에서 그는 뾰족한 절벽을 보며 굉장히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는데, 옆에 있던 다른 인물이 그의 표정을 보곤 절벽이 그렇게도 무섭냐고 물었어.

그러자 나온 대답이 바로 ‘절벽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나 자신의 자유가 무섭다.’ 였어.

그래 맞는 말이야.

나도 지금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있는 내가 무서워.

이런 무서움이 금세 불안함으로 자라나 옴짝달싹도 못할 때가 오는데, 그럼 어쩔 수 없이 숙소 안내 데스크로 가 마을이 너무 이쁘다고 너스레를 떨며 하루만 더 묵고 가겠다고 말해.

나도 내가 우스운 걸 아니까, 너라도 너무 웃지만은 말아줘.

그래도 떠올려 보면 설레는 마음이 들 때랑, 불안한 마음이 들 때 우리 몸이 똑같이 반응한다는 걸 배웠단 말이야.

자유로운 사람은 불안하고 불안한 만큼 또 자유로워.

불안하지 않은 삶은 설레지 않고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지.

나도 사실 내가 무어라 하는지 잘 설명은 못 하겠지만 넌 나를 잘 아니까 대충 이해했으리라 믿어.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이곳의 대중교통들 탓에 이만 줄여야겠다.

잘 자고 아침 출근길에 이 글을 읽거든 이 보기 드문 자유인에게 존경을 담아 답장해 줘.

사랑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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