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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럼 나는 잃어버릴 게 하나 없는 사람이 돼.
작성자 postershop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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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2-03-02 16: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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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21

나 정말 기운 차렸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지난 일주일은 나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게 사실이야.

네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도 어디서 주웠는지 모를 검은색 라이터 하나 찾으려 먼지 쌓인 이삿짐 박스까지 뒤졌던 나는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그대로더라.

어이없게 잃어버린 내 수첩과 펜, 그곳에 적혀있는 서로 이어지지 않는 문장들과 붕 떠 있는 기분들. 그런 피상적인 것들마저 자신들을 잊지 말라고, 찾아달라고 끊임없이 말을 걸어.

이걸 찾지 못하면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그 기분.

당장 본인이 단추를 잘못 꿰고 있는걸 알면서도 끝까지 옷을 여미는 사람이 있을까?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얼마나 더 그 카페 테라스 주위를 맴돌았을까.

한참이나 찾았지만, 결코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때쯤 나는 숙소로 돌아와 침대 위로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주욱 펼쳐놨었어.

수건과 속옷, 이미 헤질 대로 헤져 버렸어야 하는 샌들과 양말 몇 개. 한두 벌 밖에 없는 옷가지와 카메라. 몇 개의 쓴 필름과 또 몇 개의 써버린 필름들.

여행자라면 꼭 챙기는 시시콜콜한 준비물들까지.

여기서 하나라도 더 잃어버리면 휙 하고 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버릴 것만 같은 나 자신이 겁이 났어.

가진 모든 걸 실로 엮고 종국에 하나의 덩어리가 된 내 물건들을 한입에 꿀꺽 삼켜버리는 상상까지 하기에 이르렀지.

그럼 나는 잃어버릴 게 하나 없는 사람이 되잖아.

그런데 웃기게도 바로 그날 꿈에는 내 새끼손가락을 잃어버리는 꿈을 꿨다?

막 울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다 붙잡고 이렇게 생긴 내 새끼손가락을 보았느냐고 사정사정하다 겨우 일어났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

당연하게 생각했던, 잃어버릴 일 없는 나의 것. 내 몸마저 문득 나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나니 더 머리가 복잡하더라.

정말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일까? 내가 온전히 소유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건 또 무엇일까.

그렇게 하나하나 세어보니 내 것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단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것이라는 게 꽤 슬펐어. 사랑하는 너와, 가족들까지 아무리 내가 붙잡으려 한들 결코 내가 될 수는 없는 거니까.

퍽 슬픈 생각 끝에서야 수첩 커버 사이에 우리 사진을 끼워둔 게 생각이 났어.

둘 다 두꺼운 패딩을 입은 탓에 공간이 꽉차 팔하나 움직이기도 힘들었는데, 기어코 네가 나를 꼭 안겠다 하는 바람에 네가 반이나 잘린 채 찍힌 사진 말이야.

그래, 사진이야 잃어버릴 순 있어도 안경에 김 서린 채 사진 잘 나왔다고 뿌듯해하는 네 모습은 어떻게 해도 잃어버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 막 웃음이 나더라.

못난 네 모습 덕분에 못 먹었던 밥도 많이 먹었고, 이렇게 또 쓸 줄 몰랐던 메일을 적고 있는 거야.

벌써 이만큼 보고 싶으면 안 되는데 큰일이다.

푹 자고, 일어나면 전화해줘.

또 쓸지는 모르겠지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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