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지면[地面]과, 지면[紙面] 사이를 오가는 나의 꼴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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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묻은 손, 백지 앞에 부끄러울 것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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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매일 돌 골라내고 괭이질을 해 대는 저 한 마지기 조금 못 되는 땅이 나의 것이 아님에 떳떳하질 못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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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아라! 매일 밤 작은 필과 조금의 먹으로 씨앗을 뿌리는 이 너른 땅에는 소작료[小作料]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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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바램 틔워내는 데에 일전 한 푼 빚지지 않았음에 내리지 않는 비에도 나는 광인[狂人]만치-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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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이고 서 있는 고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작은 자취방에 틀어 앉아 있으면 ‘숨 쉬는 것 빼고 모두 돈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계속, 계속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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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음에 푹, 박혀버린 가시는 몇 달이고 빠지지 않더랍니다. 일을 마치면 괜히 죄짓는 기분에 애써 발을 집으로, 집으로만 재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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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그래요 서울입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겠다 기어코 발 붙여놓고 자꾸만 컴컴한 동굴로 들어가기만 했던 나는 바보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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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퍽 추운 겨울이 찾아왔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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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조금 덜 때보겠다고 몇 개 있지도 않은 창문에 비닐을 잔뜩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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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두어 시간 남짓 들어오던 해도 가로막히고, 바람 한 점 새로이 비집고 들어오질 않게 됐지만 괜찮았습니다. 돈을 많이도 아낀 것 같아 그냥 웃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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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버티고 버텼지만 환기도 쉬이 되지 않고, 외출이라는 두 글자만 닳은 보일러가 고장 난 지 모른채 며칠을 잠에드니 독한 감기에 걸리는 일이야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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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정말 뜨거웠습니다. 방안이 습하게 느껴질 정도로 땀을 많이도 흘렸습니다. 숨을 쉬어도 답답한 것이, 내뱉은 숨 그대로 다시 마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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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신선한 공기가 절실했습니다. 벽에 기대어 일어나 창 앞으로 기어갔지만, 붙여놓은 비닐에 창문이 막혀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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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힘을 손에 쥐고 겨우 한 꺼풀 벗겨내니 그 뒤로도 비닐이 몇 겹 더 붙어있는 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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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조심히 떼어내고 다시 붙여야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이깟게 무어라고’ 하는 생각에 화가 확 솟구쳐 잡히는 대로 찢어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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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창을 확 열어보니 온통 새하얀 공기가 물 밀듯 들어옵니다. 목마른 사람처럼 숨을 가쁘게 쉬어내고 나니 이윽고 새하얀 세상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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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눈에 덮여서인지, 오래 어두운 곳에 있었던 탓인지 별안간 눈이 시려 한바탕 울고 나니 조금은 개운해져 열도 많이 내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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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일 끝나면 집으로 곧장 가질 않고, 옆길로 새 이곳저곳 들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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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잘 마시지는 못하는 커피 두어 잔 시켜놓고, 멀끔한 공간에서 멀끔한 자세로 앉아 글을 쓰는 게 두 번째 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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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기 전 마주하는 새하얀 지면은 그날 보았던 하얀 풍경과 여전히 닮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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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저는 여전히 이곳에서 자유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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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서도 보고 계시겠지만- 검고 얇은 이 글씨가 하얀 땅 위로 거침없이 틔워 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저는 대농[大農]이 된 양 웃음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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