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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피 뉴 이어
작성자 postershop (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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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22-03-02 16: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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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10

12월입니다. 얼마 못 가 한 해의 숨이 끊어지겠지만, 나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눈 지그시 감고 그때를 떠올릴 뿐입니다.

첫눈 소식이 캐럴처럼 즐겁게 나부끼는 때였습니다. 쓸모없는 갖은 짐들을 실어나른다며 작은 트럭 하나 빌렸더라지요. 마지막 짐을 느슨히 묶고 돌아가던 길입니다.

컴컴한 밤을 옅은 라이트 불빛으로 찢어내며 앞으로만 나아가는 데에 급급했지요. 그리고 휙, 단 1초입니다. 들이마신 숨을 채 내뱉지도 못한 사이 벌어진 일입니다. 다만 그 짧은 호흡을 나는 밤새 떠올릴 수 있습니다.

길 위로 덩그러니… 사슴은 고개만 내 쪽으로 돌리곤 우두커니 서 아무런 긴장도, 슬픔도, 화도, 기쁨도 그 무엇도 내비치지 않는 눈을 하고 있더랍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이곳 저곳 전화를 돌려 사고를 수습했지만, 괜히 내가 다 분했습니다.

왜 조금도 발버둥 치지 않았느냐고, 어째서 그런 눈을 하고 있었느냐고.

그때처럼 올해도 곧 첫눈이 올 테죠. 어김없이.

다만 처지는 뒤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길 위로 덩그러니 놓여있음을 압니다.

그러니까, 분명 열두 번이나 달력을 찢어내야만 한 해가 끝이 날 터인데 올해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기억이 없다는 말입니다.

줄하나 쳐보지 못한 새 달력을 다시 새 달력으로 바꾸다 보면 화가 다 납니다.

불안한 건지 아쉬운 건지 뾰족이 알 수 없지만, 애써 하루를 몽땅 적어보면서.. 기억을 길게 늘여 뜨려 보기도 합니다.

그것도 안 되겠다 싶으면 연말을 핑계 삼아 친구들 불러내는 것입니다. 시시콜콜 떠들며 지난 기억들 뒤로 숨어봐도 이 또한 얼마 가질 못합니다.

괜히 내년엔 더 행복해지자고.. 인사말 대신 그렇게 말해버리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내 길 위에서 ‘해피 뉴 이어’ 글자를 마주합니다.

샛노란 작은 전구들로 칭칭 감겨 눈이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무어라 중얼거리며 애써 못 본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집에 돌아와 눈 질끈 감아도 ‘해피 뉴 이어’ 글자가 여전히 훤하게 떠오릅니다.

그렇게 우두커니 누워 아무런 긴장도, 슬픔도, 화도, 기쁨도 내비치질 못합니다. 단지 커다란 불빛이 천천히 내게로 다가올 뿐입니다.

해피 뉴 이어. 그 글자 앞에 나는 조금도 발버둥 칠 수가 없습니다. 어떤 감정도 내비칠 수가 없습니다.

숨이 끊어지고, 다시 숨이 이어질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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