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입니다. 얼마 못 가 한 해의 숨이 끊어지겠지만, 나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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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지그시 감고 그때를 떠올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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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소식이 캐럴처럼 즐겁게 나부끼는 때였습니다. 쓸모없는 갖은 짐들을 실어나른다며 작은 트럭 하나 빌렸더라지요. 마지막 짐을 느슨히 묶고 돌아가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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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컴한 밤을 옅은 라이트 불빛으로 찢어내며 앞으로만 나아가는 데에 급급했지요. 그리고 휙, 단 1초입니다. 들이마신 숨을 채 내뱉지도 못한 사이 벌어진 일입니다. 다만 그 짧은 호흡을 나는 밤새 떠올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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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로 덩그러니… 사슴은 고개만 내 쪽으로 돌리곤 우두커니 서 아무런 긴장도, 슬픔도, 화도, 기쁨도 그 무엇도 내비치지 않는 눈을 하고 있더랍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이곳 저곳 전화를 돌려 사고를 수습했지만, 괜히 내가 다 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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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금도 발버둥 치지 않았느냐고, 어째서 그런 눈을 하고 있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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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처럼 올해도 곧 첫눈이 올 테죠. 어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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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처지는 뒤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길 위로 덩그러니 놓여있음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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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분명 열두 번이나 달력을 찢어내야만 한 해가 끝이 날 터인데 올해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기억이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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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하나 쳐보지 못한 새 달력을 다시 새 달력으로 바꾸다 보면 화가 다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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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건지 아쉬운 건지 뾰족이 알 수 없지만, 애써 하루를 몽땅 적어보면서.. 기억을 길게 늘여 뜨려 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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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안 되겠다 싶으면 연말을 핑계 삼아 친구들 불러내는 것입니다. 시시콜콜 떠들며 지난 기억들 뒤로 숨어봐도 이 또한 얼마 가질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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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내년엔 더 행복해지자고.. 인사말 대신 그렇게 말해버리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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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길 위에서 ‘해피 뉴 이어’ 글자를 마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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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란 작은 전구들로 칭칭 감겨 눈이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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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라 중얼거리며 애써 못 본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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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눈 질끈 감아도 ‘해피 뉴 이어’ 글자가 여전히 훤하게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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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두커니 누워 아무런 긴장도, 슬픔도, 화도, 기쁨도 내비치질 못합니다. 단지 커다란 불빛이 천천히 내게로 다가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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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뉴 이어. 그 글자 앞에 나는 조금도 발버둥 칠 수가 없습니다. 어떤 감정도 내비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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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끊어지고, 다시 숨이 이어질 테지만….